본문 바로가기
이야기

선생님

by miyaong 2016. 8. 4.

아무리 혼자 쓰는 글이라도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. 혼자 배설하는 것 외에는.

이 생각이 든 건 혼자 쓰는 일기장을 볼 때마다, 버려야 되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.

순간적인 감정들의 나열들을 보고있자니 피곤이 밀려온다.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읽으면 추억이 될 진 모르겠지만

글을 읽는 나 자신에게도 너무 창피하다.


글이라 해서 떠오른건데. 

<펼쳐진 종이비행기> 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. 수업시간 과제였는데

교수님은 엄하기로 소문난 분이었다. 나는 그분의 철저함 속에 베어있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 한켠에 물결이 찰랑이는것 같았다. 

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복학생이었던 내가 그 교수님의 '입으로 하는' 등짝 스매싱에 쪽팔릴때도 많았지만. 그래도 좋았다.

개인마다 다른 과제를 주셨는데, 나에겐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써오라는 과제를 주셨다.

<펼쳐진 종이비행기>는 꿈을 잃은 나 자신에 대한 글이었다. 교수님은 매주 글을 가져가신 후 다음주에 돌려주셨는데

그 글이 적힌 종이로 비행기를 접어서 돌려주셨다.


교수님이 내게 따로 물으신 적이 있다. 넌 네가 과제도 안해오고 수업에 그렇게 불성실하게 임하는데도 내가 널 좋아할거라는 믿음이 있냐?

나는 천진난만하게 '네'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. 지금 생각하면 멍청하기 그지없는데.

누구보다 잘 하고싶었고, 1등 하고 싶었다. 그런데 그러질 못할걸 알기에 포기했었다.

한편으로 너무 죄송하다. 그런데 나는 아직도, '네'라고 혼자 믿고 있는 것 같다.


교수님이 너무 그립다. 구멍난 옷과 흰머리가 섞인 짧은 생단발머리, 낡았지만 좋은 신발.

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씩씩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, 늘 화내는 것 같은 말투.

그 단발머리와 희고 보송보송한 얼굴 피부 때문인지 어딘가 소녀같았다.


어느 겨울날엔가 입술이 심하게 트셔서 학생 중 아무나 립밤 좀 빌려다라고 말씀하셨다.

한 학생이 립밤을 건네드리자 티슈로 손을 닦은 후, 립밤을 손끝에 찍어 입술에 바르신 다음 다시 립밤 끝부분을 티슈로 닦아서 학생에게 돌려주셨다.

다른 것도 아니고 왜 그 장면이 기억에 남지.


강의실이 더러우면 수업은 시작도 안하시고 모두 함께 청소를 시작해야만 했고

1분이라도 지각을 하는 학생은 못 들어오게 했다가, 한참 뒤에 들여보내시곤 했다.

현대를 사는 미술학도가 지우개도 없이 4B연필 하나만 들고다닌다고 혼내셨다. 그땐 그게 너무 고집스러워보였다.

누구나 다 세밀하게 샤프로 드로잉하는 것도 아닌데. 그리고 난 지우개로 지우는것 보다 틀린 부분을 뭉개는 스케치가 더 좋은데.

그런데 지금은 교수님이 하셨던 말 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남아있다.

그리고 그립다.


누군가 나에게 화 내주는것

이 길이 옳은 것 같으니 여기로 가라고 다그치는것.

내가 생각하는 오렌지를 그리지 말고,  내 눈앞에 있는 오렌지를 그리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주는 것.

그게 얼마나 따뜻하고 고마운 것인지.



'이야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점심  (0) 2017.09.26
하늘  (0) 2017.09.20
최근 먹은 것들.  (0) 2017.09.19
music  (0) 2016.08.06
music  (0) 2016.08.04